낮술먹은 가마우지님의 이글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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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없음

갑자기, 결정해서 갑자기 왔다.
쉬러 가면 어떨까 말하다가 정말로 표를 끊고 와 버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가 보다. 오케이. 열심히 따라 돌아다니는데 햇살이 너무 강하다. 한 시간만 이대로 돌아다니면 피부가 마구마구 타 버릴 것 같은 느낌.
여긴 흰 피부는 별로야, 가난해서 바캉스를 못 간 거거든! 이라고 말하지만... 난 여기 살 게 아니잖아, 난 돌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한국인은 흰 피부를 선호하는 데다, 시험 시즌에 별 말도 없이 스케줄을 바꿔서 떠나 버렸는데 놀러 갔다 온 티 팍팍 나게 까매져서 갈 순 없어...
그리고 나는 예쁘게 그을리는 피부가 아니라 서양인처럼 주근깨가 생기며 벌겋게 익는 피부라고ㅠ
안돼안돼.
그래서 오늘은 양산을 쓰고 돌아다녔는데 진짜 ㅋㅋ 동양인 구경도 힘든 거리에서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을 제대로 느꼈다. 고개까지 돌려 가며 쳐다보는 사람들, 사람들. 트람에서 어떤 십대 금발 소녀 둘은 아주 얼굴 뚫리게 쳐다보더라. (음? 근데 이땐 양산 안 썼는데... 트람 타기 전에도 안 쓰고 있었는데) 모른척 하고 있다가 쓱 눈 돌려 쳐다보니 깜짝 놀라며 눈길 피하는데, 왜? 왜 그렇게 쳐다보니? 말해 보고 싶었다.

도착하던 날 노트르담 성당은 불에 타고...
콰지모도와, 사라져 가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을 생각하며 마음 아팠고. 다음날은 세월호의 5주기였고. 나는 미처 생각지 못하며 나가 돌아다녔고.







위도가 다른 먼 나라에 와서 그런가, 단순한 여독인가, 아직도 손발이 붓고 간혹 어지럽고. 허리는 뭐 내내 아프고.
 왜 이리 몸이 약해진 걸까, 병리적인 증상을 이것저것 가지고 있는 나약한 도시인간 그 자체인가 어이없기도 하고.
같은 도시지만 서울과 이 곳은 정말 다르구나 생각이 들고...
(서울은 창백하고 바쁘고 빠르고 어둡고 흐리고 세련되고 인공조명으로 밝고 시끄럽다면, 이 곳은 선명하고 한가하고-바캉스 기간이다- 느리고 햇살이 찬란하고 뜨겁고 사람들이 구릿빛이고 좀 낡고 독특하고 해가 늦게 지는데 지고 나면 온통 깜깜하고 말도 안 되게 조용하다. 짧은 피리를 부는 것 같은 새가 삘릴릴리 피요삐요, 하고 울다가 그친다)

건조해서 눈이 좀 아프다.
건조하니 뭐든 빨리 잘도 마른다.

농산물 같은 생활 물가는 아주 저렴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뭔가 비싼 느낌이다. 오면 팍팍 쏘려 했는데 쏘긴 커녕, 커피나 사고 장 본 비용 한 번 내고 몇 가지 간식 산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며칠만에 30만 원 가까이 썼다. 뭐 별로 산 게 없는데 돈 다 어디 갔니- 환전 별로 안 해 왔는데 이제 카드 써야겠음.

면세 구역 라뒤레 마카롱은 한 개 2.1 유로였다.
원래는 사서 몇 개 한국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여기까지만 먹고 이거이건 먹지 마’ 하는 것도 우습고... 냉동해 둔다 한들 한국 갈 때까지 최상의 맛이 유지될지도 미지수고, 하여 그냥 다같이 먹자고 인원수의 배수로 몇 종류 샀다.
다행히 맛있다고 해 줬음. 이딴 걸 왜 사 먹냐고 했으면 슬펐을 듯 ㅋㅋ
아, 명성이 완전 헛된 것은 아닌 듯, 라뒤레는 상당히 맛있었다(한국에선 안 먹어 봤음).



샤를 드 골 공항의 라뒤레 가판대는 조그마했다. 큰 가게가 또 있는 모양인데 내가 환승하는 코스에는 없었으... 그리고 가판대의 흑인 판매원은 불친절했다. 흥.
어쨌거나 마카롱은 맛있었으며(특히 바닐라같은 기본 맛이) 한국에서 사 먹은 피에르 에르메보다 1.5배 정도 컸고(워낙 피에르 에르메가 작다) 가격은 면세여서인지 저렴했다. 돌아갈 때 또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귀국 비행기는 스키폴에서 갈아탄다.
라뒤레는 한국에서 왜 철수했을까! 있었으면 종종 사먹었을 텐데.

그나저나 언닌 공항에서 날 보고 중화권 여배우같다고 했는데(-_-... 칭찬이 아닌 것 같아... 중국여자 같다는 게 칭찬이 될 수가 있나) 그래서 그런 건가. 저 라뒤레 마차 앞의 메뉴를 들여다보며 뭘 몇 개씩 살까 심도 있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웬 자그마한 중국인 노부부가 말을 걸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하고많은 행인 중에 누가 봐도 지나가는 관광객일 뿐인 나에게-.-! 힉 뭐지, 하고 놀랐는데 중국어로 뭐라뭐라 하는 거야... 보니까 사진 찍어 달라는 거였다.
오, 아임 코리안(= 저 중국인 아니에요, 중국말 몰라요) 했지만 사진은 찍어 주었다. 공항이 크~게 나오게 해 달라고 하더군(신기하지, 말이 안 통해도, 들어줄 마음만 있다면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다 된다 ㅋ). 그래서 여러 컷 찍어 주고 흡족한 얼굴을 보고 쎼쎼~ 하는 인사를 받고 헤어졌다.
...근데 진짜, 중국인 같아 보였나 ㅠㅠ 아놔.
까만 머리, 흰 피부, 진한 일자 눈썹 때문이라고 언니는 분석했는데- 분석하지 마, 알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내 눈썹은 한국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아! 언니가 외국에 오래 있어서 보는 눈이 바뀐 거야!

...
애니웨이.


뭐가 다를까 해서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가 봤다.
느낌인지 몰라도, 영어로 말을 걸면 여기 사람들은 좀 수줍 수줍, 이런 느낌을 풍기며 대답을 한다. 나는 여기가 영어권 국가였으면 그랬을 리가 없는, ‘왠지 영어를 퍽이나 잘 하는 사람이 된’ 느낌으로 말을 하게 된다. 내 영어를 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해도 왠지 그건 내 회화실력 탓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인 것 같은 분위기 ㅋ

전형적인 프랑스인처럼 마르고 약간 왜소한 그 금발 남직원은 내가 캬라멜 프라푸치노 톨 사이즈를 주문하자 컵을 들어 보이며 사이즈를 확인했다. 이름을 묻기에 대충 써니라고 했는데 못 알아듣고 S...를 쓰더니 나에게 미안해 하며 펜과 컵을 건네더군. 직접 쓰라고. 흠.
어쨌거나 그렇게 사 본 프라푸치노. 5.15유로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니 6580원 정도?
한국에선 5600원인데- 드릅게 비싸네;
한국 스타벅스가 제일 비싸다는 썰이 있는데 꼭 모든 메뉴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고. 디저트의 나라면서 좀 못생기고 막 만든 것 같은 초코케이크 같은 걸 같이 팔고 있어서 신기했음. 우리나라만큼 케이크 종류가 예쁘고 다양하지 않았다.
여기도 싸이렌 오더 가능하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 사람 당황할까 봐 관뒀고,
커피맛은 똑같았다 ㅋ 크림을 묻지도 않고 너무 많이 얹어 줘서 커피를 마시는 건지 크림범벅을 먹는 건지 헷갈렸지만.

*

이 곳에 오니 확실히 현실과는 마음이 멀어진다. 그게 해결이 아닌 건 안다. 나는 현실을 잠시 상자에 담아 저 멀리 밀쳐 두었다. 가끔은 거기서 풀려나온 생각의 실마리에 잡혀, 언니가 하는 단순한 이야기- 예를 들어 혼자 나갔다 돌아올 때 버스를 어디서 갈아타라든가 하는-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걸 들키기 미안해서 알아들은 척을 하느라 머리가 잠시 멍해지곤 한다.

내가 관광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 모르겠다. 가만히 쉬고 싶은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가 돌아다니기에 햇살은 너무 뜨겁고 소파에 가만히 있자니 언니의 의욕을 꺾는 듯도,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듯도 하다. 가만히 있으면 밀쳐 둔 현실이 다시 구물구물 기어나와 나를 사로잡을 것도 같다.
어쨌거나 언니는 계속 맛있는 요리를 해서 눈앞에 들이밀고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하는 중이다. 나는 자고 일어나 먹고, 돌아다니고, 쉬고, 떠들고 우리나라와 다른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잠이 든다. 시간이 아주 빨리 간다. 남은 날들이 많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런 한편, 자기 학교, 샌드위치 먹는 벤치, 자주 걷는 길, 내 소식을 듣고 펄쩍 뛰었던 길, 같은 걸 보여 주고 설명하는 언니를 보며 내가 호주 있을 때 언니가 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언니가 아일랜드 있을 때도 갔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학원 등교할 때 따라가서 학교 홀에 앉아 있다가 어떤 아줌마가 자기 사무실로 따라오라고 해서 쫄래쫄래 따라가 커피를 얻어마셨지. 알고 보니 그 아줌마는 어학원 교장이었다 ㅋ
나의 그 쓸쓸하고 거칠고 고립되어 있던 이상한 호주의 삶에 언니가 잠시 들러 주었더라면, 그랬다면 그렇게 괴롭고 쓸쓸한 기억만 남지는 않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고. 얼른 치워 버린다.
이제 와서 새삼, 뭘.

이렇게, 두서없이, 어쨌든 프랑스다.

꿈에

다시 만날 일도 없는데
쓸데없이 생각하여, 꿈
난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있었지
네가 있는 곳
자연스럽게 만날 수밖에 없는
깨고 보니 우스웠다, 난 아마
네가 보고 싶은가 봐

스포일드 차일드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던
그러나 버릴 수도 없던
손상된 아이, 어떻게든
일그러진 너를 예쁘게 펴 주고 싶었는데

옳은 것을 갈구하며 지겨워하던
사랑받길 갈망하여 매달리면서
가까이 오는 건 뭐든 걷어차던

자기가 어떤 모순 사이에 끼여 있는지도 모르던

생각하면
가슴뼈 한쪽이 미어지는 것처럼 늘 아팠지
이제 네가 없어 나는 괜찮은데

쓸데없이 생각하여, 꿈
깨고 나니 사라지는 방
사라져 버린  너
마음에 후드득 지나가는
생생한 좀전의 그림자

보고 싶었다고 중얼대던
나를 보러 오겠다고 까불던
꼬맹이,
너는 없어, 이제, 정말



그러니 나는 이제.

일기, 이글루스

* 쓱 둘러보니 그런 작명법인 듯했다- 뭐,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지만. 이글루를 개설하면 이글루스의 이름 풀에서 아무 관형절(?)+아무 명사, 의 조합이 무작위로 가서 제목으로 붙는. 그래서 예를 들면 ‘낮술먹은 다람쥐’도 될 수 있고 ‘집을 나온 가마우지’도 될 수 있었는데 나한테 우연히 붙은 게 이것인 거지.
귀찮아서 놔두고 있는데 이 이상한 이름에 정들까 봐 걱정이 약간 된다.

* 쓱 둘러보니 이 곳은 좀 신기한 곳인 듯 하다. 티스토리건 네이버 블로그건 이글루스건, 기본적으로 개인 블로그라고 생각했고, 아무리 인스타니 뭐니 다른 sns가 발달해도 개인의 작은 오두막집 같은 블로그 형식은 앞으로도 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겹치지 않는, 제대로 확보한 영역이 있으니까.
네이버 블로그는, 잘은 모르지만 아직 그렇지 않나. 망할 분위기를 감지한 적은 없는데...
그런데 이글루스는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이 역시도 잘 모르고 하는 말인가;). 뭔가 사양길에 접어든 싸이월드적 분위기, 그런 거 좀 있는 것도 같아 보였음. 나, 이미 누군가는 떠나고 있는 곳에 뒤늦게 굴러들어온 거니 ㅋ

* 어쩌면 이런 느낌을 준 건, 쓰으윽 둘러볼 때 눈에 걸린 몇몇 이글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음 뭔가, 막 서로 알고, 싸우고, 공격하고 삭제하고 비웃고 그런 일이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 생각보다 황폐하고 좁은 마당이랄까. 익명의 활동이 아주 활발한 넓은 광장이라면 그런 소규모 국지전이 벌어지긴 어려울 텐데, 이거 뭐지- 했던 거지.
내가 잘못 본 거면 좋겠는데.

*

* 역시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건 거의 없다. 일요일에서 시간이 지나 수요일 새벽으로 넘어온 지금, 그때처럼 너덜너덜한 기분은 좀 벗어났다.
벗어난 건 다행, 사실 근본적으로 해결된 게 아니며 다음 일요일이 다가오고 있으니 다친 데를 또 두들길 다음 펀치가 짜증나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안 다행.

* 왜 낮에는 책을 읽기가 그렇게 내키지 않는 걸까. 이건 무슨 신종 기분인지 모르겠다. 해가 지면 비로소 책을 들 기분이 된다. 기분 따위에 좌우되는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와... 이게, 이게이게 진짜 힘든 일인 것 같아. 어쩌면 살면서 제일 해내기 어려운 일 탑3 안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기분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을 통제하는 것.

* 마음에 들지 않아 올해는 떼어버리고 싶은, 몇 가지 버릇 중 하나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남’인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해가 지면 그때서야 부스럭대며 뭘 의욕적으로 할 게 아니라, 잠을 자라고. 그래야 그 컬러풀하고도 역동적인 꿈의 끝없는 추격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자도 잔 것 같아야 말이지. 숙면을 해야 꿈을 안 꾸지. 새벽녘에 깨서 돌아다니는 샴치의 방해를 받으며 조각조각 자니 숙면을 못하지. 그러니... 샴치 잘 때 나도 잘 좀 자야지.
원, 누가 야행성 동물인지.
해 지면 꿀잠 자고 해 뜨면 발딱 일어나 밥 챙겨먹고 돌아다니며 떠드는 너는 새나라의 고양이. 너에게서 배워야 한다.

* 떼어 버리고 싶은 버릇 중 하나는 ‘야식 먹기’인데 음... 오늘은 칠리새우를 먹었다.
엄밀히 말하면 야식을 따로 먹는다기보다는 습관이 그렇게 들어 놔서 저녁을 아주 늦게 먹는 것이다. 하루의 첫 끼를 늦게 먹으니 자연히 저녁도 늦게 먹게 되는 거지. 늦은 점심을 첫 끼로 먹고 중간에 커피나 간식 아주 약간, 그리고 저녁, 이게 하루에 먹는 것들인데 저녁 먹는 시각이 남들 야식만큼 늦다. 이게 건강을, 특히 위장과 목소리를 해치고 있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일찍 자고 일어나면, 늦게 먹는 습관도, 애쓸 필요 없이 아주 자연히 고쳐질 것이다. 잘 해 보자.

* 마음고생 다이어트가 되었는지, 일요일에 (바쁘기도 했고) 제대로 뭘 챙겨먹지 않았더니 한동안 꿈쩍 않던 체중계 숫자가 1kg보다 좀더, 훅 줄어 있었다. 어제 저녁으론 그린빈스를 150그램쯤 볶아먹고 말았더니 오늘은 거기서 좀더 줄었다.
지금 칠리새우를 먹고 배가 부르니 내일은 도로 돌아가 있으려나.
뭐. 어쨌든.

* 그린빈스는 정말 맛있다.
300그램을 주문해서 절반쯤 먹었는데, 먹으면서 새로 많이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이게 문제다... 뭔가 마음에 들면, 그 다음에 통크게 지른다. 그런데 음식에 호기심은 많고 통이 큰 반면 그리 많이 먹지도 않고 싫증도 잘 내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식재료가 냉장고에서 잊히고 있는 중일 때가, 자주 있다. 쓰다 보니 ‘진짜 대저 짭짤이 토마토’ 5킬로그램을 비싸게 주고 사서 파란 것/ 중간 것/ 우선 먹어야 할 빨간 것, 셋으로 깨끗하게 나눠 냉장고에 얌전히 둔 게 생각나는군.
새 그린빈스를 주문할 때가 아니야. 저것부터 먹자.

* 와, 오랜만에 손 가는 대로 끄적이니까 왠지 예전 생각도 나고 그렇다. ㅋ 싸이월드에 거의 10년치 일기가 있(었)는데... 그 일기들은 날아가지 않고 남아 있을까. 아니면.

* 오늘은 책을 읽다가 폰을 든 거였다. 부지런히 쓰는 것은 본받아야 하겠지만 지난 번 책에 이어 이번 책도, 읽다 보니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다. 이런 문장, 이런 구성. 왜 더 손보지 않으셨어요, 하는 생각과, 나라면 이런 글을 출판하진 않을 텐데 하는 생각, 책이 되는 글과 아닌 글의 차이가 뭘까 하는 생각이 둥둥 떠서 독서를 방해한다. 사실, 마지막 의문에 대한 답은, 이게 아니길 바라지만 이게 다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단 이름을 알린 사람은 책을 낼 기회가 좀더 잘 올 뿐이다, 그땐 품질은 기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도 눈이 있는데 내가 보는 걸 못 볼 리 없으나... 그러나, 내는 거지. 얼마간은 팔릴 테니까.

* 스티븐 킹께서 말씀하신(아, 갑자기 헷갈림... 김연수였나) ‘좋지 않은 글’의 효용을 오늘도 듬뿍 느끼고 뭐라도 끄적이고 싶어서 폰을 들었으며 그래서 여기까지 떠들었다는 그런 얘기.

* MBC 라디오에서 비틀즈 라디오가 시작한다. 어느 새 새벽 두 시.
클래식 FM으로 채널을 돌려야겠다- 난 비틀즈를 사랑하지만 왠지 이 프로그램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은 곡의 묘미는 예상치 않은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올 때 더 증폭되는 거라서 그런 게 아닐까. ‘길 가다 그 곡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어요’라든가 ‘그 곡을 다 듣고 내리려고 차 안에 계속 앉아 있었어요’가 말하듯이. 어느 날 저녁 유난히 타는 듯하던 노을, 창밖을 나란히 바라보던 연인의 옆모습, 그런 것과 함께 기억에 영원히 새겨지는 선율이 있듯이.
한 시간 내내 한 밴드의 오리지널 송이 이런저런 버전으로 편곡된 걸 계속 듣는 건, 확실히 그런 ‘발길을 멈추는 순간’과는 반대 방향 어딘가에 있다.


궁금증

1. 내가 왜 낮술먹은 가마우지인가.
난 이런 이름을 만든 적이 없어.
웬 낮술, 웬 가마우지.
폴더 이름처럼 저절로 생기는 건가? 근데 진짜 웃기는 것 같아. 가마우지라니!
내게 가마우지가 연상시키는 건 일본인들에게 낚시 도구로 활용당하는 가엾은 모습 뿐인데. 음...

2. 이글루는 개인 블로그나 일기장 같은 성격보다는 다같이 읽자는 잡지에 좀더 가까운 걸까.
쓰는 사람 마음이지, 생각하지만, ‘발행’이라는 거창한 버튼이 저기서 저렇게 쳐다보니 좀 부담스럽다.

저기, 혹시 ‘읽을거리’인가 싶어 클릭했다가 실망한 분이 계시다면 죄송해요. ㅋ 저는 앞으로도 쭉 일기처럼만 끄적일 거랍니다.
칼럼 형태로 완결되는 글을 쓰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남이 읽는다는 전제 하에 글을 쓰는 건 스트레스가 상당한 데다, 내게 개인 sns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속을 털어놓는 대숲의 기능인데 거기서 글 다듬을 생각을
하면 진짜 숨막힐 거니까.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음. 싫음.

3. 게시판 생성을 하고 분류, 관리를 할 수 없는 걸까?
트위터처럼 그냥 쓰는 대로 쭉쭉 밀려가고 끝인 건가?
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그 점이 싫은 거였는데. 만약 이글루스도 그렇다면 생각 좀 해 봐야겠네.
정돈된 서랍이 달린 책상, 칸칸이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딸린 다락방, 그런 게 좋지, 시간에 따라 흘러가 버리는 시냇물은 내 취향이 아니다. 진짜 물과는 달라 원한다면 나중에 찾아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나저나 그런지 안 그런지 대체 어디서 찾아봐야 하는 거야. 관리 버튼도 없고 으아~ 낯선 그대.


안녕, 나의 이글루.

블로그도 한번 안 해 봤는데 갑자기, 이글루.

*

오늘은 기댈 어깨가 필요했어.
인간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는 하루.
털어놓고 싶은데 누굴 붙잡고 말하기도 뭣하고 페북에 쓰기는, 오랜만에 올리는 피드가 투덜거림이면 좀 그래서 못 하겠다. 그래서 이글루. ㅋ 미안해. 처음 쓰는 게 이런 거라.

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나는 언제까지...

*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바로 삐이- 이명이 시작되어, 지금도 이명이 들리는 게 아닐까 좀 걱정했는데 아직 괜찮다.

*

거짓말하는 녀석들, 눈치 보며 사람을 떠보는 녀석들, 궁금한 게 많아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는 녀석들, 그런데 허용할 수 없는, 하기 싫은, 그러니 눈치 슬쩍 보며 질문을 꼬아 던지는...들켜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인, 저만 아는, 타인의 감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비겁한, 회피하는...
아, 인간의 비루함을 나에게 그렇게 자꾸만 보여 주지 마.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은데, 정말이지 속이 시끄럽다.

나를 몹시 서운하게 하는 적이 종종 있는 언니지만, 그래도 내게, 많은 경우, 좋은 귀는 언니였는데.
언니. 오늘은 언니랑 막걸리 연거푸 따라 가며 아픈 목이 조금 더 쉬더라도 밤새 맺힌 것을 털어놓고 마음껏 탄식하고 싶다. 바닥을 탁 쳐 가며,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분개해 가며.
그러나 언니는 너무 멀리 있네.

*

내일은 정말 하루를 길게 써야겠다. 어쩌면 요즘 내가 마음을 가누기 어려운 것은 일기를 오랫동안 안 썼기 때문, 책을 오랫동안 놓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념을 가라앉힐 시간이 없었던 거지.

어지러운 마음, 이 어지러운 마음, 에서 나를 구해내 주자. 나의 세계로, 읽고 쓰는 세계로 돌아가야지. 그 안에서 두터운 커튼을 치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고만 싶으나, 그럴 수 없어서 슬프지만, 그래도 가능한 동안에는 나의 세계로.

어쩌면 그것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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